2024/8/22 – 10/19
참여 작가 : 곽혜은












맡나서 반가워요 (Nice to sniff you)
시청각의 세계
코를 통해 공기 중의 화학 분자를 감지하는 것, 후각은 생명이 가장 빨리 진화시킨 감각이며, 매체로 확장하기 힘든 원초적인 감각이다.[1]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이 『미디어의 이해 Understanding Media』(1964)에서 매체(media)를 인간 신체의 확장(extension of man)이라고 했을 때, 그가 논하는 신체의 감각은 주로 시각과 청각에 대한 것이었다. 인쇄 매체의 발전 이후 인간의 감각 중에서 시각에 대한 비중은 고도로 높아졌고, 음성 저장 기술매체의 발전으로 청각에 대한 비중도 증가했다.[2]
그러나 매클루언은 일부 지면을 할애해, 동양 문화권에서는 ‘향’을 태움으로써 시간을 측정했음을 언급한다.[3] 여기서 그는 후각이 인간 감각 중 가장 미묘하고 섬세할뿐더러, 전체 감각을 오롯이 포괄하는 감각임을 말하는데, 따라서 인쇄매체를 위시한 시각문화 사회에서는 후각을 제거하고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4] 시셀 톨라스(Sissel Tolaas)나 아니카 이(Anicka Yi)의 작업 전반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날 우리가 여러 방법을 동원해 자연스러운 냄새(후각적 요소)들을 철저히 지우고자 노력하는 것에는 이같이 지배적인 시각문화가 가진 모종의 권력관계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클루언은 모든 것이 시각으로 환원된 지금의 세상에서, 발전하는 새로운 매체기술을 통해 우리가 본디 갖고 있던 오감(五感)의 균형을 다시 찾아나갈 수 있다고 바라봤지만, 아직까지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다양하고 복잡한 화학분자들을 디지털화하여, 어느 장소에서든 알맞은 농도로 합성하고 재현하는 보편적 후각매체의 개발은 오늘날의 기술로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5] 이처럼 매체로 옮기기 힘들다는 것은, 우리가 느끼는 감각들을 신체의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품을 파고드는 반려동물의 온기, 연인의 친근한 살결 냄새, 할머니가 끓여줬던 찌개의 맛처럼 촉각과 후각, 미각의 감각은, 시각과 청각에 비해 보다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에 깊게 닿아 있다.[6]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냄새가 난다.”[7]
이번 개인전 《맡나서 반가워요 Nice to Sniff you》의 곽혜은 작가는 시각예술에 ‘후각’을 지속적으로 접목시켜, 본인의 작업을 후각예술(Olfactory Art)의 범주로 묶어왔다.[8] <공간자화>(2024), <혜은의 손>(2024), <다시 맡나서 반가워요>(2024), <손 냄새 맡는 방법>(2024), <체취 비누>(2024)같은 작업에서, 설치된 시각적 결과물, 영상과 퍼포먼스의 연속적인 신체의 움직임(몸짓), 청각적인 효과, 체취는 서로 뒤섞여 배치되며 혼종적(hybrid)인 감각의 몽타주를 구성한다. 작가는 우리가 애써 통제하고 제거하려는 ‘자연스러운’ 냄새(체취)를 외려 밀도 있게 복제하고 재생산하여, 그 냄새를 통해 촉발되는 경험에 집중한다. 그에게 체취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언어화될 수 없는’ 이야기를 증언하는 수단처럼 보인다.[9] 작가의 말처럼, 존재한다는 것은 냄새를 가진다는 의미이며, 인간의 체취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신체적 증거이자 기억 그 자체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시청각적 이미지만으로 ‘재현’될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의 매체 환경에서의 재현이란,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자극만으로 한껏 꾸며진, 불완전한 <트루먼쇼>의 세트장과도 같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이 <죽음과 재난 Death and Disaster>의 연작을 통해 드러냈던 것처럼, 오늘날 쉴 새 없이 반복되고 복제되는 시청각적 이미지의 바다는, 우리로 하여금 특정 이미지들에 지나치게 익숙해지게 함으로써 그 이미지가 가진 진정한 의미들을 정체시키고 희석시킨다.[10]
[1] “인간의 냄새 감각은 인체의 다른 많은 기능과 마찬가지로 진화 초기, 아직 바다에 살던 시절의 유물이다. 향은 먼저 물에 용해되어야 점막에 흡수되어 맡을 수 있다.” 다이앤 애커먼, 『감각의 박물학』,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23). 44.
[2] 칼 세이건(Carl Sagan)이 1972년의 파이어니어호나 1977년 보이저호에 실어 보냈던 금속판과 LP의 메시지들도, 외계 생명체가 시각과 청각에 의존할 것이라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이고 시청각편향적인 관점에 입각한 것이었다. 심효원, 「공동체적 행위로서의 후각」, 『비교문학』 90호 (2023): 158-160.
[3] Marshall McLuhan, 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 (New York: McGraw-Hill Book Company, 1964), 164.
[4] 특히 서구 문명사에서 후각은 비이성적이고 진화되지 않은 감각으로 여겨져 왔다. 프로이트는 냄새에 예민한 사람을 심리적으로 정체된 상태로 설명하기도 했다. Madeleine Kaye, “Tracing the Scent of Feminine Decay: Smell in the Art of Louise Bourgeois, Anya Gallaccio, and Clara Ursitti” (University of Dundee, 2021), 10-11.
[5] 냄새 분자의 인식 지연시간, 사람마다 다른 호흡주기, 냄새의 지속성, 문화적·인종적 차이, 후각신경의 적응성, 향의 질, 알러지, 다른 감각들과의 부조화 등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장벽들이 많다. 김정도, 「미디어 융합을 위한 후각 디스플레이 기술」, 『방송과 미디어』 20(3) (2015): 84-89.
[6] 톨라스는 말한다. 우리는 “어머니를 보기도 전에” 그 체취를 먼저 맡는다고. Whitney Mallett, “Sissel Tolaas: The Certified Expert of All Things Smell Is on a Quest to Sharpen Your Fifth Sense,” PIN-UP 36 (2024): 89.
[7] 곽혜은 작가노트.
[8] 후각예술의 범주에 대하여는 다음 글을 참조. https://www.larryshiner.com/art-and-scent (2024년 8월 21일 접속)
[9] 클라라 어시티(Clara Ursitti)는 작업 전반에 여성의 체취를 가져오면서, 인류 문명사에서 위생이나 청결, 건강 등의 가치가 부상하면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체취는 지워져야 하는 것으로 매도되었으며, 특히 남성의 체취에 비해 여성의 그것은 순결하고 깨끗한 여성성이라는 요구 앞에서 여성들 스스로가 내재하는 자기혐오의 원천이 되었음을 지적한다. Jim Drobnick, “Clara Ursitti: Scents of a Woman,” Tessera 32 (2002): 85-97.
[10] “인쇄매체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저장능력을 지닌 디지털 매체에서 기억과 망각의 교체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일어난다. 이렇게 보면 망각의 문제는 전체주의 국가에서처럼 정보의 엄격한 통제에 대해서만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과다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의 매스미디어 셰계에도 해당된다. 무한한 삭제와 덧쓰기가 가능한 유동적 형태에 있어 기존의 필기동작과 상이한 디지털 문자는 기억과 망각의 경계 해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윤미애, 「매체와 문화적 기억: Medien und kulturelles Gedächtnis」, 『독일어문화권연구』 11 (2002): 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