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무브먼트
본 인터뷰는 2023년 4월 6일부터 5월 27일까지 진행되는 《초월된 위계들 Transcending Hierarchies》 전시의 참여작가 2인 민지훈, 양나영 작가와의 아티스트 토크 내용을 바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민지훈(좌), 양나영(우) 작가 (촬영 : 김혜림)
Q. 먼저 간단한 자기 소개와, 하고 계시는 작업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민지훈(이하 ‘민’) : 안녕하세요. 저는 민지훈이라고 합니다. 개인적 경험과 주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동시대 삶의 풍경들을 설치나 미디어, 평면 등의 매체를 통해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양나영(이하 ‘양’) : 안녕하세요. 저는 양나영이라고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회화와 오브제를 겸한 설치작업을 했어요. 도시를 직접 걸어 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도시의 여러 표면에서 보이는 다원적 시공간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Q. 두 작가분들께선 처음 전시 제목(초월된 위계들)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본인의 작품이 본 전시와 어떤 지점으로 엮일 수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민 : 처음엔 ‘제 작업이 이런 주제로 연결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던거 같아요. 개인적 경험을 통해 얻은 소재들로 진행된 작업이다보니 타인의 관점, 그러니까 기획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저의 작업이 이런 식으로 읽힐 수도 있구나 했던거 같습니다. 초월된 위계라는 전시 주제와 제작업은 어떤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 주는 생경함’ 으로 엮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위계를 초월한다’라는건 기존의 어떤 질서나, 관념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를 지니는 거 같고, 제 작업은 다른 시점, 익숙한 사물의 보여지지 않는 이면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보니 일반적인 관념과 반한다는 지점에서 엮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양 : 서문을 읽었을 때, 인터넷 관계망, 인터넷 네트워크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이미지가 생각이 났는데, 데이터가 집중된 곳이 수많은 점처럼 있고 그게 서로 연결되어서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그런 이미지죠. 제 작업은 아마 그 점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뒤로 비껴나가고 밀려난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제가 표현하는 것들도 대부분 그런 장면들이거든요. 변화와 속도에서 밀려나거나, 그 자체로 자기만의 속도를 가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죠. 예술이 물리적 네트워크라고 얘기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지난 몇년간 코로나 장기화로 많은 부분이 접촉하지 않는 비물리적 환경으로 대체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물리적인 공간 안에 아날로그적인 유기체로서 살아가요. 물리적인 부분과 비물리적 부분이 공존하는, 두 가지 세계에서 모두 잘 살아 남아야 하는 시대인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제 일상에서 수집한 장면을 큰 맥락에선 이렇게 시대와 맞닿아서 해석될 수 있다는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Q. 민지훈 작가님께 먼저 질문을 드릴게요. 작가님의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키네틱,’ 즉 ‘움직인다’는 행위가 중요한 맥락을 차지하는 듯 보입니다. 작가님의 작업들을 보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움직임과, 반대로 우연히 일어나는 움직임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작년에 만드신 택배 상자 시리즈와 이번 신작은 움직인다는 요소는 공유하고 있지만, 입력과 출력의 방향은 정반대로 보인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택배 상자 시리즈가 택배배송 과정의 의도되지 않고 예측불가능한 움직임들을 수집하고 입력하여, 데이터화되고 정형화된 움직임으로 출력하는 작업이었다면, 환풍기를 이용한 이번 신작은 반대로 환풍기 모터의 출력 세기처럼 고정적이고 데이터화된 설정값을 입력하면, 저 공처럼 예측불가능하고 우연한 움직임으로 출력되어 표현되는 방식이거든요. 작가님께서 특별히 이러한 운동, 움직인다는 행위에 대해 신경 쓰고 있는 중요한 지점들이 따로 있을까요?
민 : 지금까지의 제 작업의 저변에 깔려있는 그러니까 무의식적으로 작업에 반영되고 있는 생각들이 몇가지 있는거 같아요. 내용적인 부분에서는 기계라는 대상이 과거에는 인간과 대립구도에 놓여져 있었다면 현재는 인간의 삶의 일부로써, 신체의 연장선 위에 놓여져 있는 대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형식적인 부분에선 ‘움직임이 주는 현재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의 모습들을 감각하게 하는 연결고리로써 제 작업에 움직임의 요소가 들어가게 된거 같아요. 움직임의 입출력 등은 사전에 고려하진 않않지만,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부유하는 상자들>_민지훈_택배상자, 모션플랫폼, LED 램프, 2채널 사운드_2021
Q. 다음은 양나영 작가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작가님의 삶의 형태가 작업의 주제와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님은 인간이 ‘존재했던’ 도시의 흔적들을 그대로 작업으로 보여주고 있는데요. 달리 말하자면 작가님이 만들어낸 도시의 풍경은, 이미 ‘바랜 무언가’거든요. 과거의 흔적들입니다. 그래서 작가님의 작업을 읽어낼 때 과거와 마주하는 ‘기억’이라는 요소가 중요해 보입니다. 이를테면, <경계계단> 시리즈를 볼 때도 단순히 시각적인 형태 뿐만 아니라, 거친 시멘트의 표면도 어떤 기억을 끌어내기 위한 촉각적 매체로서 설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님이 살아왔던 어떤 삶의 형태, 다시 말해 ‘삶의 기억’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양 : 이 질문은 마치 ‘넌 어떻게 살아왔니?’하는 질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웃음) 삶의 형태, 삶의 기억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제가 살아온 기억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기억을 다루는 방식의 변화가 작업 방법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인데요. 사실 제 작업은 굉장히 많은 부분에 있어 경험에 기반하고 있고, 그래서인지 작업이나 소재와 ‘나’를 분리하기 힘든 것 같아요.
작업이 다루고 있는 기억은 대부분 ‘집’이라는 키워드에서 출발해요. 영어로는 Home인데, 고향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더 사적이고 구체적인 느낌의 ‘집’이라는 단어를 조금 더 선호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집에 관한 기억을 떠올렸을 때 머릿속을 스쳐가는 여러 이미지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저는 다세대 주택에서 많이 살았었기 때문에, 창문을 열면 빛이나 바람이 아니라 꽉 막힌 시멘트벽이나 벽돌의 표면을 보게 되는 경험이 잦았어요. 또 언젠가 한번은 임대주택을 보러가야 하는 때가 있었어요. 엄청 기대하는 마음으로 갔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창문이 머리 위의 시점에 달려있었어요. 분명 지상인데도 그 창문때문에 마치 반지하같았죠. 그게 꼭 감옥 같은 인상을 주면서, 묘하게 기분이 나쁘더라구요. 이런 기억들이 쉽게 잊혀지지 않고 몸과 마음에 새겨져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게 기억이 어떤 의미를 가지냐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그런 이미지들이 너무 강하게 남아서 작업을 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작가로서는 다행이고, 소중한 요소죠. 그러면서도 이런 기억들을 어떻게 잘 거리를 조절해가며 작업으로 끌어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게 돼요.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생긴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기억이 짐이 될 정도로 강해지고 결국 기억에 잠식되거나 지배를 받는 상태까지 이르고 싶진 않거든요. 그래서 그런 기억들을 어떻게 다루면서 작업을 해내갈 것인가 고민이 되죠.
<경계계단>연작_양나영_혼합매체_2022-2023 (촬영 : 방상환)
Q. 다시 민지훈 작가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하나의 주제에서부터 파생되는 여러가지 작업들을 보면, 작업이 보여지는 방식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민들이 엿보입니다. 그래서 더욱 작업을 구상하고 제작하는 프로세스가 궁금해지는데요. 작업의 모티브는 어디서 얻으시나요? 그리고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설계한 뒤, 제작하는 일련의 단계가 있을텐데, 각 단계별로 중점을 두시는 부분이나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민 : 음. 제가 모티브를 얻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고, 제 일상에서 모티브를 가져오는 편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어떤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마주하게 되잖아요? 그러다 갑자기 익숙했던 것들에 감정적인 동요가 일어나는 순간이 있는거 같아요. 그러면 이것에 왜 내가 반응을 하고 왜 집착을 하고 있는지, 마인드맵을 그려보면서 어설프게나마 분석을 하게 돼요.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게 작업의 구상으로 이어지게 되는거 같아요. 작업으로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해야할까요? 그렇게 갑작스럽게 작업이 이루어지는 편이에요.
이전에 <페인팅 머신>이라는 프로젝트 작업을 했었는데, 이걸 구상하게 된 건 제가 대학원 때 어떤 아트마켓에서 운영팀으로 겪었던 일 때문이었요. 마켓 중에 어떤 판매자 분이 오시더니, “(다른 판매자 분의 상품을 두고) 저건 손으로 만든게 아니다. 다른 데서 군데군데 물건을 사모아서 내놓은 것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켓에서 판매할 가치가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그때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회화를 전공했어서 그런지, 작업을 할때 ‘작품’이라는 결과물하고 ‘나’라는 사람이 일대일로 직면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 사이에 만약에 나를 대신해서 그림을 그려주는 기계가 생긴다면, 구조나 관계가 어떻게 변할까? 이런 마인드맵이 그려졌어요. 그때부터 <페인팅 머신> 프로젝트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림을 그리는 기계를 제작하고, 그것으로 그림을 생산해내고, 생산된 그림이 다시 시장에서 팔리는, 그런 구조를 상상해본 거죠. 마침 얼마 전에 ‘프린트 베이커리’라는 곳에서 그 그림 하나가 팔렸거든요. 그게 저한테는 이 프로젝트의 사이클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는, 굉장히 큰 의미였죠.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생각을 분석하며 작업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생기는거 같아요.
택배 상자를 이용한 <상자의 기억>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에요. 아무래도 코로나 시기를 빼놓을 수 없을텐데, 누군가와의 소통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지금 나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건 택배상자를 기다리는 마음 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그때 이 택배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겼죠. 내 택배가 어디쯤 왔는지 위치확인을 하면서, 내가 볼 수 없는 그 (택배가 이동하는) 공간들이 궁금해졌고 경로를 추적해보고 싶은 마음에 작업으로 발전됐죠.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한다면, 일단 구현하는 방법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채로 시작하다보니 어느 순간 내 능력치를 벗어나는 기술들이 필요해질 때가 반드시 생기거든요. ‘내 기술로는 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까’ 그 고민을 시작하게 될 때가 가장 힘들어요. 그때부터 이제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게 되죠. 기술을 보유한 대학이나 산업체에도 찾아보고, 네이버 지식인도 쓰고. (웃음) 을지로도 많이 찾아갔죠. 특히 <상자의 기억> 작업들 경우에, 저걸 움직이게 하는 컴퓨터 코딩이 굉장히 어려운 코딩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수소문을 해서 모션플랫폼이라는 걸 만들고 연구하는 업체에 연락을 드리게 됐는데, 거기 이사님께서 흔쾌히 기술을 제공해주셨죠. 그래서 그 덕분에 작업을 무사히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점은 작업을 할 때마다 항상 생기는 거같아요. 그리고 그걸 해결해낼 때마다 작업을 하는 재미가 생기기도 하구요.
Q. 업체에서 흔쾌히 기술을 제공해주었다는 게 신기하네요.
민 : 네 미술과 관련없는 분야에 계시는 분들도 생각보다 미술에 관심이 많으세요. 그래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거절하시는 분들보다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배송일지>_민지훈_택배상자, 모션플렛폼, 나무, 유리_2023
Q. 양나영 작가님의 2020년부터 2021년 사이의 초기 작업을 보면, 낡은 도시의 여러 흔적들을 포착해서 평면의 캔버스에 재현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반면 작년부터의 작업들은 설치 작업을 병행하면서, 회화에서도 공간에 대한 이미지를 편집하고 재구성하는 식으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장면을 기록하던 행위에서, 능동적으로 장면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변화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작업 방식에 변화를 준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덧붙여, 작업에서 가장 고민하시는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요?
양 : 내면적인 질문이 많은 것 같아요. (웃음) 기존 작업들이 프레임이나 구도를 신경 썼던 건 아니었고, 사람들이 쉽게 주목하지 않는 것들을 정면에서 잘 보이는 방법으로 나타낼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러다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기억을 다루는 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 같은데요. 기억에 잠식되고 지배당하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기억에 개입하고 소화하는 식으로 삶에 변화가 생겼던 것 같아요. 그게 어떤 일직선적인 시간의 순서에 따라 변한 건 아니고, 서로 왔다 갔다하며 혼재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지금도 그런 상태에요.
<겹과 층> 작업에 그런 변화들이 많이 드러나 있어요. 제가 코로나가 시작되던 시점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시기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었는데, 신도시 지역으로 방문수업을 많이 갔었어요. 그곳의 구조나 시각적으로 보이는 표면, 여러 가지 것들이 저에게 익숙했던 집이나 고향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라서 괴리감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때 느낀 시각적인 충격도 (작업의) 변화에 한 몫을 했습니다. 그 이질감이 몇 년간이나 언어나 물리적인 작업으로 풀지 못한 채 남아 있었어요. 이번에 <겹과 층> 작업을 하면서 그런 경험들을 소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거 같아요.
<겹과 층> 작업에서 처음으로 처음으로 유리창이라는 표면과 고층빌딩이라는 소재를 들고 왔는데, 전체 화면 안에서 이런 요소들의 배치를 바꿔보는 시도를 하면서, 알게 모르게 내면에서 느껴지는 위계를 전복해보려는 생각도 했었어요. 하지만 뭔가 어색하더라고요. 결국 제가 경험한 걸 바탕으로 시각적으로 정직하게 나타내는 게 순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신도시를 걸으면서 겉으로만 표면적 이미지를 읽은 게 아니라, 방문수업의 특성상 사람들에 집에 직접 찾아가고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게되는 경험을 했는데, 이 경험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만약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만 집중했다면 제가 섣불리 작업에 비판적인 요소를 들고 왔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중심과 주변을 나누지 않고, 모두 포괄하는 상태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부분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앞으로의 고민이죠.
<겹과 층>_양나영_린넨에 유채_2023 (촬영 : 방상환)
Q. 민지훈 작가님 작업은 어떻게 보면 신체와 노동에 대한 은유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환풍기 호흡훈련>이나, <상자의 기억>, 이런 작품들은 의인화를 통해서 사람의 신체가 구체적으로 상상되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사람의 눈이나 뇌, 폐 이런 것들이죠. 더군다나 택배라는 요소는 신체를 이용한 노동의 대명사같은 것이고, <상자의 여정> 작품도 상자 내부에 있던 잉크묻은 구슬들이 배송 과정 속에서 흔들리고 움직이면서 자동으로 궤적을 남기는 드로잉 작업이잖아요? 그건 어떻게 보면 작가의 손길이 아닌, 택배기사의 노동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볼 수도 있거든요. 특별히 신체, 혹은 노동과 관련된 요소들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풀어가시는지가 궁금합니다. 또한, 작업을 통해 관객에게 얘기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민 : 진행 단계에서는 노동이나 신체와 관련된 요소들을 딱히 염두에 두진 않아요. 물론 작업이 마무리 되어갈 때 쯤에 그런 요소들이 엮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하죠. 그렇지만 작업 노트에는 그런 내용들을 잘 쓰지 않습니다. 작업은 개인적인 관심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섣불리 건드리면 그건 거짓말을 하는 셈이 될 수도 있고, 프로젝트 자체가 한쪽 방향으로 치우쳐서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작품에서 읽혀지는 여러 방향성들은 모두 관객의 몫으로 두는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품을 만드는 것 까지가 제 역할이고, 관객들이 (작품을) 다양한 관점에서 봐주시면서 작업 자체의 내러티브가 쌓이고, 자연스레 사유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저는 작업을 통해 서로의 현재를 공유하고 위안이 되는 순간을 만들고 싶어요. 개인이 느끼는 결핍이나 고민들을 타인에게 털어놓았을때 그들 또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받곤 하잖아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 결국 우리는 서로 다른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동시대라는 교집합의 영역 속에서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만드는 작업들도 삶에서 비롯된 여러 감정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듯, 어떤 하나의 이야기와 공감의 형태가 되길 바랍니다.
<환풍기 호흡훈련_I>_민지훈_환풍기, 덕트부속, 타포린호스, 탱탱볼_2023
<상자의 여정>_민지훈_종이에 잉크_2021
Q. 양나영 작가님의 작업은 공간에 대한 고민과 리서치가 많이 필요할 거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작가님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도시 공간은 철저하게 텍스트가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밖에 나가서 도시 공간을 바라볼 때, 그게 구도시나 신도시를 가릴 것 없이 얼마나 많은 텍스트가 존재하고 있는지 찾아보면 다들 깜짝 놀랄 거에요. 간판, 광고지, 낙서 가릴 것 없이 사람이 살았던 곳에는 그 언어와 문자의 흔적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작가님의 작품 속에는 분명 사람이 살았던 공간인데, 언어의 흔적은 없어요. 제가 이전 질문에서 기억에 대해 여쭤봤던 것도 이것과 맥락이 맞닿는데요,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한다고 했을 때, 방법적으로 주로 사용하는 수단이 언어와 문자입니다. 그러나 언어로는 차마 담아내지 못하는 기억도 존재를 해요. 우리는 그것을 트라우마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라는 감정적 기억을 보존하고 재현하는 비언어적인 수단이 예술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작가님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텍스트를 치밀하게 지움으로써, 언어로 담지 못하는 감정의 기억을 보존하는 예술적 방법, 어떤 자신만의 메모리얼(memorial)을 만드는 과정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혹시 작업을 위해서 자주 찾으시는 장소가 있나요? 그 장소의 배경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관객이 본인의 작품을 마주했을 때, 어떤 체험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양 : 저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정말 텍스트를 다 지우고 있더라고요. 제가 찾아가는 장소는 제가 살던 집 주변이에요. 고향의 골목길 구석구석을 지겨울 정도로 걷고 다시 걸어요. 요즘은 집 주위를 걸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찾아가 걷고 왔습니다. 변해버린 모습도 있고, 기억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들도 있었어요. 멀리서 볼 땐 아무 것도 변한 것 없이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곳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의 눈으로만 알 수 있는 미세한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오늘 뭐 어디 페인트를 조금 칠했거나, 무언가를 덧대어 고쳤거나··· 개발이라는 거시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는 인식할 수도 없을 정도로 미세한 건데,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봤을 땐 큰 변화들이잖아요. 저는 그런 변화에 관심이 있어요. 그런 부분이 그곳에 흐르는 시간의 속도를 말해주는 것 같아요.
언어적 수단으로 무언가를 기억하는 방법과 비언어적 수단으로 기억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제가 미세한 변화를 인지할 땐 그건 대부분 이미지였던 것 같아요. 문자는 조금만 변해도 상대적으로 알아차리기가 쉽거든요. 그리고 문자가 들어간다면, 즉시 구체적인 어떤 곳을 지시하게 되죠.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텍스트를 지우고 있는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저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구상적인 방법을 쓰긴 하지만, 될 수 있으면 추상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요. 추상성이 있어야 바라보는 사람들이 다양한 체험이 가능할 것 같아요.
<여기, 있어요>_양나영_ 혼합매체_2022
Q. 마지막으로 두 분 모두에게 질문 하나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각자 작업을 계속할 수 있게끔 하는 원동력이나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덧붙여 현재의 관심사와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민 : 원동력은 관심을 가져 주시는 한두 명의 관객들인 것 같아요. 매번 전시를 할 때 마다 꼭 한두 분은 재방문을 해주시거나, 공감해 주시면서 작업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봐주시곤 합니다. 그럴때마다 전시 준비로 인한 피로가 가셨던 거 같아요. 그렇게 작업에 공감하고 반응을 해주실 때마다 진솔한 대화를 나눈 느낌이 들어요. 그러면 어느 순간 제가 다음 작업을 또 하고 있더라고요.
현재는 올해부터 시작한 <언더그라운드 랩소디>라는 새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어요. <환풍기 호흡훈련>은 그 테스트 작업인 셈이죠. 제가 서울에서는 계속 지하에 있는 작업실을 썼었는데, 지하에 있다보면 지상에서는 생각치 못한 일들이 항상 벌어집니다. 환기나 습기와의 싸움 같은 거죠. 그런 경험들에서 이번 새 프로젝트가 시작됐어요. 당장 8월과 11월에 개인전이 있어서 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양 : 그걸(원동력) 찾았다면 작업량이 폭발적으로 많았을 텐데, (웃음) 잘 모르겠어요. 당장은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 만족스럽지 못함이라고 답변드리고 싶어요. 전시를 할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반응들이나, 전시된 광경을 보면서 스스로 부족한 점을 느끼게 되는 지점이 있거든요. 그래서 전시 후엔 여러 과제를 떠안게 되는데, 해야 할 것들이 생기니 좋기도 하지만 데드라인을 향해 앞으로만 나아가다 보면, 끝난 후에 소진감이라고 할까요? 그런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 그런 상태인데, 요즘은 지난 작업들을 되돌아보는 중이에요. 앞으로 활동기간이 더 길어져서 5년, 10년, 20년, 이런 식으로 데이터가 쌓이면 시즌마다 했던 작업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치며 발전되는지가 보이겠죠. 그걸 생각하면 기대되는 바가 커요. 그걸 위해서라도 작업을 계속 해야겠죠? 결국 더 나은 상태를 만들려고 하는 것, 그게 원동력인 것 같아요.
그리고 10월에 개인전이 있어요. 전포에 있는 공간에서 열릴 예정인데, 공구상가와 상점들이 혼재되어 있어서 재밌는 공간입니다. 저는 공간을 직접 걸어다니면서 연구하는 편이라,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그런 공간을 읽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거 같아요. 안 그래도 집 주변과 일하던 곳을 벗어나서 새로운 곳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여행과는 조금 다른 맥락인데, 아무래도 여행은 오랜기간 머물지 않는 이상 소비자로서만 공간에 머무르는 느낌이 있죠. 이번 전시에서는 <겹과 층> 작업을 벽에 평면적으로 나열했지만, 다음에는 사면의 입방체를 감싸는 식으로 시도해볼 생각이에요. 오브제 작업에 대한 고민도 있는데, 이번 <경계계단> 주제에서 나아가서 난간처럼 움직임을 꾸며주고 상상해주는 요소를 더 넣어볼 계획도 있어요.
Q. 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이지원 큐레이터
민지훈
추계예술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서양화 분야 졸업
추계예술대학교 미술학과 서양화 전공 졸업
개인전
2022 <과정,결과 그리고 딜레마> 관훈갤러리, 서울
2021 <상자의 기억> 빈칸_을지로, 서울
2020 <Replace> 대림창고, 서울
단체전
2022 <끝과 시작을 위한 소인> 예술공간 의식주, 서울
2022 <기억의 습작> 메타 아트 갤러리, 강북문화재단, 서울
2021 <365일의 하루> 예술공간 의식주, 서울
2020 <작가의 이력서> 예술공간 의식주, 서울
2020 <나는 아홉번째 구름위에 있다> 인디아트홀 공, 서울
2018 <2018 SCOUT> 갤러리 이마주, 서울
기타
2023 <예술창작지원사업_시각> 서울문화재단
2023 <홍티아트센터 레진던시 입주작가> 부산문화재단
2018 <2018 ART-UNI-ON Artist 선정> 서울대학교, 현대자동차
양나영
부산대학교 미술학과 서양화 전공 졸업
개인전
2020 <Record ‘ing’>, MARU STUDIO&GALLERY, 부산
단체전
2022 <가위바위가위바위보보>, 오픈스페이스배, 부산
2022 <Busan Lap art fair>, 523갤러리, 부산
2021 갤러리예문 초청기획전 <각자의 오늘>, 부산학생예술문화회관, 부산
2021 <횡단하는 짧은 선>, 예술공간 이일구, 부산
2021, 2020 공공미술프로젝트 특별전 <공감의 시작, 아트감동진>, 감동진갤러리, 부산
2021 <나래展 시원한 바람>, 갤러리 마롱, 서울
2018 <서동탐사선 아트배틀>, 서동 작은 미술관, 부산
2018 청년작가 지원전 <물렁해지다 ; 공공의 방>, 스페이스 만덕, 부산
2018 기획초대전 <2019, 이 작가를 주목하라>, Space UM, 부산
2018 <동시다발전-IN KANAZAWA EPISODE 展>, 시민예술촌 샤토야마의 집, 일본
2018 <부산사랑 젊은작가 프로젝트>, 을숙도 문화회관, 부산
기타
2022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 BEXCO, 부산
2022 오픈스페이스 배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