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7 – 11/07
참여 작가 : 김은지






김은지 작가는 독일 칼스루에(Karlsruhe)에서 수학한 후 다양한 전시 경험을 쌓은 후 귀국하여 이제 막 본격적인 국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신진 작가이다. 김은지 작가는 회화를 전공하였으나 현재 미디어, 드로잉, 설치를 통해 공간과 환영, 미디어가 지닌 다양한 구조의 재현 방식들을 조망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김은지 작가는 전시 공간에 몇 가지 매체를 위치시킨 후에 이것이 지닌 텍스트, 이미지, 영상 등의 요소를 함께 드러나게 하여 공간 자체를 하나의 매체로 변화시킨다. 미디어에서 보이는 영상에는 관객들이 이를 보고 반응하는 행동, 혹은 카메라를 응시하며 하게 되는 메이크업, 텍스트와 사운드 등이 서로 연속하여 나타나며 연쇄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캔버스에 투사되는 텍스트의 경우 회화를 제작하는 작가들의 긴요하지 않은 단상들을 옮기고 있다.) 이 과정은 전시 공간 속에 들어간 관객들이 매체를 통해 스스로를 상호작용하여, 다시금 반추하게 되는 일종의 거울 역할을 하게 된다. 미디어가 설치된 공간에서 다각도의 시선과 표정들과 반응한 관객들의 행동들에 의해, 매체적 망점들인 이미지와 텍스트가 점유한 공간은 하나의 작가적 미디어로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설치 과정들은 우리의 눈과 카메라의 재현을 연동시켜 바로 우리가 현실세계를 이해하는 인지적 정신작용들을 재고하게 만들어 주게 한다.
김은지 작가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영화의 단편들, 프레임, 색면을 활용한 정신분석적인 서사 해체이다. 영화이론가인 장 루이 보드리(Jean-Louis Baudry)가 언급했듯이, 카메라의 눈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눈이 카메라를 따라가는 동안 우리의 정신작용은 미디어의 경험에 사로잡힌 체 부동성의 감금상태가 된다. 이것은 주체적이면서도 동시에 육체적인 한계를 지닌 영화적 쾌락의 필수 조건을 떠올리게 한다. 즉 이미지가 지닌 관객과의 상호 소통성은 관객의 점진적 감금과 함께 일어났다는 것이다. 관객들이 상상하는 인지적 자유가 가상적이 될수록, 우리는 더욱 부동적이 되며 신체적인 감금의 상태가 될 수 있다. 김은지의 설치작업들은 반대로 모든 기호와 인지적인 잡념들과 문자들, 색면들과 이미지들이 그러한 부동성의 상태를 뒤집어 해체시켜 풀어낸다. 이러한 미시적인 인지의 체계와 (어떠한 기호나 텍스트들의 상호 연쇄들) 관객들의 반응 행동들을 보여주는 설치작업들이 공간 자체를 마치 우리의 정신작용을 들여다보듯 지각적인 매체 공간으로 바꾸는 과정들로 보이게 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김은지 작가는 그러한 미디어의 인터페이스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과감하게 부각함으로써 화면 위의 양립 불가능한 기호, 환영, 텍스트, 현장음과 행동들을 동시에 노출시켜 행위의 도구인 이미지가 서로 대립하는 장으로 만들고 있다. 예술을 포함하는 현대의 시각적 인터페이스가 지닌 이러한 속성은 단지 미디어적인 주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서도 종종 연장되고 있다. 김은지 작가가 이러한 과정을 즉시 설치 공간에서 드러나게 함으로써 그 공간은 현실세계를 다양한 방식의 기호적 충돌의 장으로 다시금 조망하게 만들어 준다. 이 세계에서는 사물이 움직이는 기호가 되고 텍스트가 다른 영상으로 도약하는 이미지가 되며, 환영은 하나의 기호적 텍스트로 변형될 수 있다. 우리의 경험세계가 지닌 일관된 경험이 아닌 비선형적인 속성들은 우리의 현실과 일상 속으로 무한하게 확장되기에, 김은지 작가의 이러한 전시 공간에서의 경험들은 방향성 없는 해체라기보다, 점차 샘플링되고 교환정보로 작용하는 일상경험의 리얼리즘적 논평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김은지 작가의 공간에서의 몇 가지 매체를 시각과 인지 경험의 과정으로 설치를 점유해 나가는 방식들은 상당히 직관적으로도 재치 있고 감각적이다. 그것을 관객의 시각 경험과 연동시켜 구체화시키는 설계를 읽어나가게 하는 공간적 배려가 작가적 재능과 잘 결합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매체의 재맥락화(remediation) 작용이 단지 미디어라는 기술방식에서 뿐만 아니라, 예술의 재현과정과 관객의 정신작용들과 아울러 결합되어 간다는 것을 설치과정을 통해 노출시키는 과정은 김은지 작가만의 유니크한 접근 방식으로 보여진다. 국내에서 미디어나 인지적 과정을 이렇게 소상하게 풀어 나가는 작가가 드물어지고 있는 가운데, 김은지 작가는 앞으로가 더욱 기대가 되는 작가이며 그 시각적 인식들을 꼭 한번 짚어 보고 싶은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
(기획 김현명/ 매체비평)
